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처세술에 뛰어나서 가늘고 길게 정년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고, 엄청난 성과를 내고도 경영진과의 불화나 인간관계에 실패하여, 또는 자신의 업적을 포장하는데 서툴러 짧고 굵게 조직생활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1만원어치 성과를 올리고도 1천원의 보상과 대우,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 1천원의 성과를 올리고도 1만원어치의 평가와 보상을 받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누군가는 남의 등골을 빼먹으면서 조직은 그렇게 굴러가는데, 결국 조직 전체로 보면 제로가 되는 제로섬 사회의 압축판이 회사가 아닐까?

 

여러 회사를 돌아다니다보니 이런 상사도 있고, 저런 부하도 거느려보기도 하고, 많은 조직생활의 달인들을 보기도 하고, 옆에서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조직생활의 기본을 가르쳐주고 싶은 하수도 보기도 하고, 참으로 다양한 회사원들의 모습을 경험하였는데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 그들의 소소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약간의 각색을 통해 그려보고 싶었다. 회사생활을 어떻게 해 왔는지 보다는 인간으로서 그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지금 내가 재직하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은 다른 회사의 대표이사직도 수행하고 있는 투잡 사장님이다. 데이타베이스데이터베이스 등 IT분야에 대한 지식이 박식하여 실제 업무지식을 활용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서 본인의 이름으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도 2건이나 등록하였고, 금융, 인사, 재무, 노무 등 관리적인 분야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도 많아 CFO역할도 원활히 수행하고 있다. 금융업부터, 용역, 유통, 제조업 등 업종도 다양하고 폭넓게 경험하여 직간접 경험도 풍부한 그에게 문제 해결을 물어보면 그의 경험에서 거의 그 해답이 나올 정도로 업무적인 능력은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다. 큰 돈은 못 벌었지만 아직까지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고, 본인이 원한다면 잘릴 것 같지도 않으니, 회사원으로서는 성공한 사람으로 분류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분은 자신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정신승리거리를 찾아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부분에서 위안을 받는 특이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전교 1등을 못한 열등감을 어떻게 해서든 전교 1등거리를 찾아 정신승리를 하고야 마는, 그래서 그 열등감을 극복하는 자기 세뇌의 달인이라고 할까? 

고교시절 최고의 성적이 전교 3등임에도 불구하고, 전교1, 2등을 했던 친구들의 성적을 조사하여 지난 과거에서 그들을 한 번이라도 이겨봤으면 내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녀석들은 없으니 내가 전교 1등이나 다름없다고 우월감을 가지는 그런 성격이다.

 

공부에서 전교 1등을 못했으면 사소한 부분에서라도 전교 1등을 하면 된다는 주의이기 때문에, 전교 1등으로 등교하기, 수학여행갔다가 학교에 돌아올 때, 버스에서 전교 1등으로 내리기, 뒤에서 전교 1등으로 집에 가기, 대학 입학원서 쓸 때 전교 1등으로 학교장 도장받기 등등 남들은 자랑하기엔 쪽팔리는 것들을 전교 1등을 했던 사례라고 지금도 얘기하고 있다.

그는 공부에서만 1등하는게 뭐가 중요하냐, 운동에서 1등한 것도 인정받는데, 뭐라도 1등한 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전교 1등이라는 목표를 꼭 공부에서 찾을 필요는 없지, 뭐라도 전교 1등 한번 해보고 졸업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냐?

라고 자신을 합리화 시키곤 한다. 남들은 합리화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자신을 세뇌시키고 성취감을 얻고 마음의 평화와 열등감을 해소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의미충이다. 자신이 당한 교통사고에 대해 얘기하면서 6살때 세발자전거로 교통사고를 당했고, 14세때 두발자전거로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네발로 운행하는 자동차에 대한 운명 같은 게 느껴져서 자동차를 몰게 되면 반드시 큰 교통사고를 당하리라는 예감이 들어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지 않으려고 했단다. 그런데 운전면허를 따지 않고서는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교통사고가 나서 죽더라도 결혼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동차 운전면허를 획득했는데, 항상 운전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큰 교통사고가 내게 올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고 운전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몇 년전 큰 교통사고가 났었는데, 국도변의 가게 하나를 초토화시킬 정도로 큰 사고가 났었는데, 다행히 큰 부상은 당하지 않았고, 대물이든 대인이든 큰 손실 없이 잘 마무리된 적이 있다. 그 사건 직후 그는 이제 홀가분하게 운전을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두발과 세발 교통사고 다음에는 뭐겠는가? 네발달린 자동차 사고가 필연적으로 다가올 것이 아닌가? 압도적으로 많은 사고가 네발 자동차 사고이고, 운명이라면 네발 자동차 사고만 피해가진 않을 게 아닌가? 이제 불안감에 떨게 한 사고의 액운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으니 비행기 사고만 남았구나, 하지만 비행기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내 권한 밖의 일이니 비행기 사고가 나서 죽는다면 운명이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얘기이다.

 

지금도 작은 체구이지만 어릴 때에도 체구가 작아서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했다는 그는 초등학교 4학년때 큰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 제일 싸움을 잘하는 친구가 체구가 왜소하고 가장 만만해 보이는 그에게 다가와 다른 친구들이 보는 가운데 그를 번쩍 들어 올리고는 힘자랑을 한 것이다.

 

머리위로 그를 올려서 마치 손오공이 여의봉을 휘두르듯 머리 위에서 무릎 아래로 사람을 여의봉처럼 휘두르고, 등 뒤로 돌리기도 하고, 가슴 앞으로 돌려서 뱅글뱅글 돌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가지고 놀다가 머리 위로 그를 올려서 서너 바퀴를 돌렸는데, 본인도 어지러웠던지 그를 놓아버렸다고 한다. 2미터 가까운 높이에서 집어던져진 그는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 위에 앞쪽 이마부터 뒤쪽 정수리까지 머리가 갈려버렸고, 피가 사방으로 튀어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인근 정형외과에서 몇 십바늘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당시에는 나름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그를 가해한 친구와 그의 부모가 사죄의 뜻으로 과일바구니를 들고 와 그의 부모님께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에게 가해진 학교 폭력의 그림자가 이러한 사태가 있어야 끝이 나고 사과를 받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렇게 큰 사고를 당한 덕분에 괴롭힘의 기간은 길지 않았다고,... 다만 그 사고가 없었더라면 어떤 더 큰 사고를 당해야 끝이 났겠느냐며 작은 출혈로 큰 사고를 막는 운명같은 걸 깨달았다고 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지금은 아플 수 있지만 나중에 더 큰 아픔을 피하기 위해 작은 아픔으로 끝낼 수 있을 때 끝내는 편이 낫다는 처세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입학할 당시 평준화시대이기는 했지만, 이름값있는 명문고등학교에 추첨을 통해 배정되기를 원했으나 야간고등학교인 2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입학했다. 주간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였지만, 야간은 질이 안좋은 학생들이 많았다. 특히 이 고등학교는 싸움을 잘하는 학교로 유명하여 시내 한복판에서 패싸움을 벌리기도 한 전력이 있고,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교사 모집시 해병대나 특공대 출신, 운동선수 출신 등을 선호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부가 있는 학교가 겪게되는 특이한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데, 하교시간과 2부 학생들의 등교시간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 때 질이 안좋은 2부 학생들이 순진해보이는 일반 고등학교 학생들을 먹이감으로 노리게 되고, 매번 돈을 띁기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1학년 학생들중에 3학년에서 싸움을 제일 잘하는 짱의 동생이 있었는데, 이 친구가 형의 위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며 1학년 짱처럼 군림하기도 했고, 3학년 야간자습이 있던 시기여서 공부하기 싫은 3학년 선배들이 1학년들을 사냥하여 3학년 교실로 데려가서 협박하면서 강제로 3학년 자신의 자리에서 야간자습을 시키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폭력과 친숙하고 유명한 학교이다 보니 교사들의 체벌도 많았고, 교무실이나 체육실에서 2차 가해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기분나쁜 일이 발생하면 1시간내내 체벌로 인해 수업이 정지되는 경우도 많았고, 등록금 납부가 연체되는 경우 납부를 하지 않은 학생들의 명단을 부르고 그 학생들을 체벌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돈이 없어 등록금을 체납하는 학생들도 많아서 많이 서러워했다고 한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고등학교 생활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유연함과 비굴함, 융통성 등의 처세가 필요했다고 하는데, 어차피 세력기반을 가진 싸움짱들과 이길만한 완력도 없고, 뒷배경도 없는 상황에서 적당한 유연함, 적당한 비굴함을 통한 융통성 있는 자세가 필요했다고 한다. 세렝게티 초원같은 야생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버텼고,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나날속에서 운명적 우연을 신봉하게 되었다고 한다.   

 

운명적 우연을 믿는 그의 경험은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힘을 발휘하게 되는데, 어머님이 점쟁이로부터 받아온 숫자 25. 대학교 입학원서를 접수하는 날 대학교 원서 접수창구에서 25번째로 입학원서를 접수시키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출동해서 25번째로 입학원서 접수에 성공하고, 대학교에 합격한 그는 그러한 점쟁이의 점지가 대학에 넣어준 것이 아니라 공부 외적으로 이렇게라도 노력하고, 합격할 것이라는 믿음과 위안에 세뇌된 심적 안정이 대학 입학을 이끌어 낸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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