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는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각종 시위로 얼룩져 있었고, 백골단이라 불리던 사복 경찰들의 불온서적에 대한 감시로 검문검색이 학교 밖에서 수시로 이루어지던 암흑의 시기였다. 그가 대학에 입학 후 처음 맞이한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1차 술 고문에서 생존하고, 2차 술 고문에서도 어찌 버티면서 선배들에게 끌려간 여관에서 선배들끼리 그를 앞에 두고 나누는 대화는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맥주를 사 오고 과자를 안주삼아 3차 술자리를 가지는 대학교 2학년, 3학년 정도 되는 선배들이 술에 곯아떨어진 그의 동기들을 재우고 그 앞에서 나누는 대화는 정치체제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는 그를 보고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은 대학에 가면 빨갱이들이 많으니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만 하거라 는 이야기를 못이 박히도록 듣고 세뇌될 정도였는데, 선배들이 나누는 대화는

 

우리나라 정치체제는 문제가 있어 바뀌어야 한다. 쿠바식 사회주의 체제로 가야 한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정책으로 쿠바는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이니 쿠바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좌파 정치인들이 더 급진적으로 가야 하는데 힘이 없다. 우리 같은 대학생들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진정한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대해 국민들을 계도해야 한다.    

 

대략 이런 내용으로 의기투합하는 선배들끼리 체제 논쟁을 하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빨갱이를 조심하라고 어른들에게 들었을 때만 해도 그런 빨갱이가 어디 있어 라면서 반신반의했던 그는 고등학교의 또래 집단에서 느끼지 못했던 이질감을 처음으로 느끼면서 앞으로 닥칠 대학에서의 생활이 두려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기숙사 신입생 환영회 자리에서 광주 출신의 어느 신입생이 술에 취해 민중가요를 부르면서 80년 광주를 기억하느냐고 울부짖으며 그 당시 상황과 주변 사람들의 피해 얘기를 전하며 흐느낄 때는 지역감정으로 서로 적이 되어버린 반대편 출신으로 마치 가해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분위기 때문인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문열의 소설과 김광석과 이문세의 노래가 유행하던 그 시절, 노태우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살인마 노태우는 물러나라는 구호는 대학가에서 여전히 울려 퍼졌고,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김수행 교수의 정치경제학원론 같은 책이 없으면 지식인 취급도 해주지 않던 학과 내의 여러 학회 소속 학생들 속에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나 하는 불안감도 여전했다고 한다.

학과의 학생 간부들은 학생회를 소집하고, 참석하지 않으면 은근한 왕따를 당하는 상황이다 보니 참석해서 얘기를 듣다 보면 시위에 대한 계획과 참석자, 지원방안들, 시험거부 방안, 총학생회를 통해 내려온 지시사항 전달 등 마치 내가 운동권 학생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고, 총학생회라는 조직에 대해 반감이 들기 시작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그 당시 신입생들이라면 무조건 가야 했던 문무대라는 곳에서 1주일의 군사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1주일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것도 군대라고, 얼굴만 들이밀고 거의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던 동기들과 담배 한 대씩 피면서 이념이 아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만 이러한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과 우리 편이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어서 군사훈련 기간 동안 힘들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군대에 가보니 대학생이라고 많이 봐준 거였는데, 그 당시에는 힘들다고 죽는소리하는 동기들이 정말 많았다고 한다.

 

문무대를 다녀온 후, 대학생활의 전환점을 맞기 시작하고, 뜻이 맞는 동기들이 친구가 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이념이 아닌 그 나이대에 맞는 사랑,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진로, 군대 등 다양한 주제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학회에 속한 친구들과도 얘기를 나누면서 좌파라는 그들의 생각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 시작하면서 편협한 사고, 선입견, 오해의 틀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와 친한 친구는 방학기간 중 주체사상 교육을 받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는 금지된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과 좌파를 지지해야 지식인이라고 하는 일종의 허세 가득한 분위기도 한몫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친한 친구 몇 명,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 몇 명, 오며 가며 인사 나누는 친구 몇 명, 얼굴만 아는 친구 등 친구들이 세분화되기 시작했고, 지연과 학연으로 친밀감이 있는 고등학교 동문들을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점점 넓어지면서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선배를 알게 되어 행정고시를 준비해보겠다고 학교 고시원에 시험을 치고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고시원에 있으면서 고시과목에 맞춰 수강신청도 하고, 매월 고시원에서 시험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1학년이다 보니 꼴찌해도 본전인데, 고학년들이 그에게 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에게 지지 않으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그의 2년 선배가 꼴찌를 하고, 술을 엄청 먹었다는 후일담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선배는 지금 어느 지방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고시공부를 하던 선배 중 어떤 이는 뱀알을 구해와서 커피포트에 넣고 그 우린 물로 커피, 라면 등 생활 식수로 사용하곤 했었는데, 그 선배 왈 뱀이 얼마나 정력에 좋은지는 잘 알지? 그 좋은 뱀의 알을 이렇게 넣었으니 뱀 효능의 수십 배 효과가 있을 거야? 이것만 먹으면 공부하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라는 시골 출신의 그 선배는 뱀알의 효능이 너무 센탓인지 시름시름 앓다가 몇 년 후 병사했다고 한다.   

 

 

1학년 1학기 때 교내 장학금을 받았지만 전액 장학금이 아니라 아쉬웠다는 그는 1학년 2학기 학과 전체 3등이라는 우수한 학점을 취득하며 외부 전액 장학금을 받아 안정적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계산을 했다고 한다. 외부 장학금 지원을 하기 위해 매일 학생처, 교학과 등 관련 부처의 게시물을 보고 다녔는데, 데모가 심했던 탓인지 예년과 다르게 공고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 50%를 지원하는 장학금 공고가 하나 떴었는데, 담당 교수가 고등학교 선배였고, 1년 선배가 자기가 소개해줄 테니 한번 인사하고 오라는 제안까지 거절하면서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가장 친한 친구의 부탁으로 학과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고시원 선배가 학교를 뒤지며, 그를 찾았다고 한다. 그가 바라던 전액 장학금의 기회를 가져다 주기 위해서...

그러나 평소 학과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그의 성향을 알던 선배가 학과 회의에까지 그를 찾아오지 않았고, 그날 전액 장학금 응시 기회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나중에 그 소식을 듣고도 성적에 대한 자신감이 있던 그는 학과 성적이 3등이고 같은 학년에선 적수가 없는데 내가 안 받으면 누가 받느냐면서 학교 장학금 신청도 하지 않고, 외부 장학금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고 한다. 

학교 내 시위가 거세지면서, 학교가 휴교령을 내린 것이었다. 학교가 문을 닫게 되면, 장학금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었고, 그는 그 좌절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에게는 1년 고생으로 남은 3년간 등록금 걱정 없는 편안한 대학생활을 꿈꾸며 열심히 학점관리를 했는데, 그리고 그 성과를 들고 과실을 따먹기만 기다렸는데, 과수원이 문을 닫는 생각 하지도 못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50%짜리 외부 장학금도 아쉽고, 1/3 정도를 지원했던 학교 장학금 신청을 안 한 것도 아쉽고, 2학기 이후 거의 참석하지 않던 학과 회의에 참석한 것도 아쉬운 상황이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현실은 100% 전액 향토장학금...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고, 장학금 받는다고 했던 아들이 등록금 전액을 보내달라고 하니 실망한 부모님께도 죄송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그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은 하면 된다 로 살아온 인생에서 해도 안된다 는 좌절과 운명적으로 그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기운이 있을 때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가 라는 숙제를 풀어야 앞으로의 인생에 비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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