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와 달리 오사카는 일찍부터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였으나, 인근의 나라, 교토가 일본의 수도로서 위용을 자랑할 때 수도에 버금가는 성장은 하였으나, 740년에서 745년 수도였던 현재의 오사카 중심부 난바지역인 나니와쿄를 제외하고는 수도로서의 위상을 가지지는 못하였고, 현재는 동쪽의 에도, 즉 도쿄가 수도로서 제1의 도시가 되었으며 상업수도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2인자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다. 행정구역상 수도인 도쿄는 도쿄도, 오사카는 오사카부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인근의 교토와 나라에 비해 오사카의 문화유적지는 유명하지 않은 편인데, 그래도 문화유적지로 답사를 다녀올 만한 유적지가 인덕릉과 오사카성이다.  

 

인덕릉은 닌토쿠 천황릉, 다이센 고분이라고 불리며, 규모가 크기로 유명한 중국 진나라 시황제릉이나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도 규모가 큰 세계 최대 규모의 고분이라고 한다. 오사카부의 사카이시에 위치해 있으며, 고분 주위의 해자는 관람이 가능하나 내부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막상 관람은 불가능하다. 

오사카성 주변 해자

이에 반해 오사카성은 일본의 3대 이름난 성으로 유명하다. 일본의 3대 성은 큐우슈우섬의 구마모토시에 있으며, 가토 기요마사가 지었다고 하는 구마모토성과 오사카에서 고베를 지나 효고현의 히메지시에 위치해 있으며, 아카마츠 노리무라가 지었다고 하는 히매지성과 오사카성이다. 이 가운데 세게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은 히메지성이 유일하며, 히메지성만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으며, 나머지 2곳은 복원성이다. 

오사카성 해자

오사카성은 현재 오사카성 공원으로 오사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공원 내부에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신 호코쿠 신사도 있다.

오사카성 공원
오사카성 공원
오사카성 공원 안내도

 

호코쿠 신사

오사카성 내부로 들어서면 커다란 거석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거석들은 과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성 건립을 위해 지방 다이묘들에게 거석을 요구했고, 지방 다이묘들이 바친 이 거석들의 크기가 클수록 다이묘들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충성도가 큰 것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지방 다이묘들이 커다란 바위들을 구하기에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오사카성 내부 거석

오사카성 내부로 들어서면 박물관 처럼 생겼지만 박물관으로 운영하지 않고 있고, 역사에 대한 자료와 기념품을 팔고 있으며, 레스토랑이 있는 건물이 있다.  

예전 일본군 사령부 건물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4사단 사령부가 주둔하여 사령부로 사용하였다가 전쟁이 끝난 뒤 오사카 경시청(1946~1958), 오사카 시립 박물관(1960~2001)으로 사용되었고, 그 뒤 비어있다가 2017년부터는 “미라이자 오사카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레스토랑과 기념품점 등이 영업하고 있다.

예전 일본군 사령부 건물

오사카성 천수각

사단사령부 건물 내부를 둘러보고 나오면 오사카성의 중심이자 대표적인 건물인 천수각이 보인다. 천수각 내부 관람을 위해서는 별도의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사단사령부가 들어선 이후에 복원한 천수각은 옛 원형을 잃은 건물로 내부에 들어가봤자, 오사카 조망탑일 뿐이라는 생각에 들어가지 않았다. 

 

오사카성 외부 해자

오사카성을 둘러싼 해자는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그 웅장함에 보는 맛이 있었다. 오죽하면 이 해자때문에 도쿠가와이에야스군과 도요토미 히데요리군의 전투에서 히데요리군을 장기간 지켜주는 역할을 했을까....

 

오사카성 천수각

천수각을 지나서 아랫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관람객들이 지나치기 쉬운 자그마한 안내판과 비석이 하나가 나오는데, 미리 오사카성에 대한 공부를 하고 들어간 터라, 이곳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인 히데요리와 히데요시의 부인이자 히데요리의 어머니인 요도기미가 도쿠가와 이에야스군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자살한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토요토미 히데요리와 요도기미가 자살한 유적지

 

원래 이 곳은 불교종파인 정토진종의 본거지인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가 있던 자리로, 오다 노부나가와의 10년 전쟁끝에 패한 뒤인 1580년 불타 버린 곳이다.   

폐허가 된 자리에 오다 노부나가는 이 곳에 오사카성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으나, 1582년 6월에 일어난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 노부나가가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죽임을 당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혼노지의 변 - 요사이 노부가츠 그림

혼노지의 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으로, 혼슈우섬의 츄코쿠 지방을 영지로 하는 다이묘인 모리 가문은 토벌하기 위해 히데요시가 츄코쿠지방의 타카마츠성을 포위하고 모리군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모리측에서 원군이 지원에 나서자, 오다 노부나가에게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이 때 지원군으로 1만3천명의 병력을 인솔하고 츄코쿠 지방으로 떠난 지휘관이 당시 오다 노부나가의 심복이었던 아케치 미츠히데였다.   

오다 노부나가도 츄코쿠로 직접 출전하기로 하여 교토의 혼노지라는 절에 머무르게 되는데, 교토인근에 머물러 있던 아케츠 미츠히데는 서쪽으로 군대를 돌려 혼노지로 향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오다 노부나가의 병력은 약 100명정도였다고 전한다. 혼노지에 도착한 아케치 미츠히데는 새벽에 "적은 혼노지에 있다." 라는 유명한 명령을 통해 혼노지를 불지르고, 오다 노부나가의 병력을 도륙하였다. 하지만 오다 노부나가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아 그의 생존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장남  오부 노부타다가 있던 니조고쇼도 공격하여 노부타다의 할복을 이끌어내는 등 기세등등하였으나, 츄코쿠지방에서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아케치 미츠히데는 13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혼노지의 변 (삽화)

평소 아케치 미츠히데를 무시해온 오다 노부나가가 그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혼노지의 변은 일본내에서는 부하에게 상처주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고 전한다.

 

아케치 미쓰히데를 제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후계자를 가리는 기요스 회의를 통해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시바타 가쓰이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시바타 가쓰이에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일본 전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 오사카 시립미술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오다 노부나가의 유업을 이어받아 1583년에 축성을 시작하여 7년만에 일본 최고의 성으로 오사카성을 만들게 되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그의 사망으로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인인 요도기미와 그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기거하는 성이 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충성파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충성파가 격돌한 그 유명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 진영이 승리한 후,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잔존 세력의 본거지가 되었다. 히데요리가 21세로 성장한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20만명의 병력으로 오사카성을 공격하였고, 오사카성의 금과 은 등 재물을 풀어 사무라이 10만명을 용병으로 불러들여 방어하였다. 오사카성의 해자가 워낙 막강한 방어력을 발휘하여 그해 겨울 2달동안의 공격에도 끄떡없이 이를 막아냈는데 이를 오사카 겨울의 진이라고 한다.   

오사카성 겨울의 진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화친을 하기로 하기로 했는데, 조건은 오사카성의 바깥쪽 해자를 도쿠가와 이에야스 측이 흙으로 메우고, 외곽 성벽은 도요토미 히데요리 측이 스스로 허물기로 약속하는 형식적인 항복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 쪽의 체면을 세워준다는 것이었다.


도쿠가와 히데요리 측에서는 당시 71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죽으면 나중에 뒤집을 생각으로 받아들였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바깥쪽 해자 외에 안쪽 해자도 메워버리고 외곽 성벽의 대부분을 허물어버려 오사카성의 방어력은 격감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병력을 소집하여 공격을 감행하면서 1615년 5월에 2차 전투가 재개되는데, 이 2차전을 오사카 여름의 진이라고 한다.

성벽과 해자를 잃은 오사카성은 전투 시작 단 2일 만에 함락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요도기미 모자는 자살했다.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사카성을 완전히 파괴해 버린다.

오사카성 여름의 진

공방전 이후로 한동안 폐허로 남아 있던 오사카성은 에도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1620년 오사카성을 다시 재건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는데 부지 면적은 1/4로 줄어들었고, 그 외에 나머지 부지는 밭을 갈거나 공터로 비워두었다.

1665년에 천수각이 정통으로 벼락을 맞아 소실된 뒤 재건되지 않았다. 그리고 메이지유신기인 1868년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몰락과정에서 오사카성의 화재로 나머지 건물들도 소각되고 말았다. 

1888년 일본군 제4사단이 창설되고 오사카성에 사령부를 설치하면서 철근 콘크리트로 천수각을 복원하였고,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하여 현대식 건물로 원형을 잃어버린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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